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에다 토시하루 (문단 편집) == 에피소드 == * 어릴 때는 도쿠시마현 변호사회장인 삼촌을 존경해 [[변호사]]를 꿈으로 삼았다. 그래서 간사이대의 체육특기생 입학 제의를 뿌리치고 가산점 100점을 받는 조건으로 법대 입시에 응시했는데, 결과는 400점 만점에 398점으로 '''법대 수석'''이었다. 그러나 학점 메우기도 벅찬 혹독한 훈련과 선배들의 강압적 구태 등이 맞물려 [[사법고시]]를 포기했고, 결국 야구를 업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 1988년 10월 22일 한큐 브레이브스 해단식에서 선수들을 소개하면서 "은퇴하는 [[야마다 히사시]], 그리고 남아 있을 [[후쿠모토 유타카]]"라고 말하려다가 실수로 "은퇴하는 야마다, 그리고 후쿠모토"라고 말했다. 우에다 본인은 곧장 실언을 수습하려고 했으나 이미 각종 스포츠 신문 1면에 '''후쿠모토 은퇴!'''라고 대서특필 되었고, 결국 후쿠모토는 본의 아니게 은퇴하고 말았다. * [[닛폰햄 파이터즈]] 감독으로 재직하던 1996년 9월에 그의 아내와 딸이 [[통일교]] 신자[* 정작 통일교는 야구보다 [[일화 천마|축구]]에 관심이 많았다.]인 것이 밝혀지며 야구계 안팎에서 논란이 일었고, 우에다는 "가정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팀을 어떻게 지도하겠는가" 라며 감독직 사임을 선언했지만, 구단 측의 적극적인 만류와 설득으로 3주일 만에 "그동안 많이 고민해 봤지만 역시 나는 우리 선수들과 우리 팀을, 또 야구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라면서 사의를 철회하고 감독 직에 복귀하는 소동이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당시 [[오릭스 블루웨이브]]와 우승경쟁을 벌이던 닛폰햄에 악영향을 주었고, 결국 이해 닛폰햄은 오릭스에게 2년 연속 리그 우승을 허용하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